2016년 3월 9일

자료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역사 #3

작성자
웹마스터
작성일
2016-05-06 15:08
조회
283

[2] 활성화에 따른 발전

평신도의 특수 사도직은 레지오 마리애 신심단체가 전국의 모든 교회에 소개되자 사제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선행되는 가운데 서로 앞다투어 평신도들에게 권장하면서 쁘레시디움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레지오 마리애의 도입 과정도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 예를 들어본다면 첫째, 교본의 내용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교본 규칙을 무시하고 적절한 편법으로 운영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둘째, 지도자의 편리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다 보니 결코 바람직스런 방법이 아님을 늦게나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떤 평의회에서는 심지어 묵주기도를 5단이 아닌 1단만 바치자고 했던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한 교본에 조직, 운영에 따른 규칙이 자세히 나열되고 있지만 번역이 어렵게 되어 이해하는데 곤란했던 일 등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으니,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며 연구해서 원만히 운영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대군단의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본 신심단체의 고유한 특성은 첫째 자기자신의 성화요, 둘째는 하느님 말씀의 전파이다. 신심단체이기 때문에 두터운 신심으로 영성생활이 앞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단원들이 증가됨에 따라 약간의 혼선이 있었으니 영적 지도자들이 정성어린 지도로 이제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 세나뚜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지도 신부님을 맞아 바로 더블린에서 하고 있는 그대로 정통성 있는 레지오를 전수받아 전국의 레지오 지도에 임함으로써 레지오 운영의 본보기가 되었다. 어느 지역에서나 레지오 지도가 잘못 되어가면 광주 세나뚜스에서 직접 방문하고 지도하며 서신으로 질문에 응답하는 것은 물론 매월 월보를 통하여 운영과 관리에 대하여 교육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광주 세나뚜스에 질의해 오고 있다.

서울 지역의 레지오는 1955년 8월 19일 광주대교구 현 하롤드 대주교님의 주선으로 당시 서울 성의중?고등학교장으로 계셨던 김성환 신부의 지도를 받아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설립된 후로 모든 본당에 확산되었다. 1956년 9월 25일 혜화동 본당에 치명자의 모후 뿌레시디움이 설립되었고, 1957년 1월 29일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꾸리아가 설립되었고, 1958년 6월 8일에는 꼬미씨움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상지의 좌 꼬미씨움은 서울 꼬미씨움으로 지칭되었다. 1959년에는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꾸리아가 설립되었다.

초대교회, 조상들의 강한 신심이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듯 초창기의 선배 단원들은 매우 열심히 레지오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달마다 단원들은 매우 열심히 레지오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였다. 매달마다 증설되는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거대한 군단을 형성할 수 있었다.

1960년 3월 30일에는 명동 대성당에 본부를 둔 무염시태 꼬미씨움이 설립되었고 같은 해 5월 8일에는 무염시태 꼬미씨움으로 승격시켜 수도권 레지오를 관리 운영해 오다가 날로 확장되는 레지오 조직의 관리를 위해 1974년 9월 25일 무염시태 꼬미씨움을 레지아로 승격시켰다.

한국 세나뚜스는 전국을 관리 운영하면서 이제까지 큰 고충은 없었으나 계속 레지오 조직이 확산됨에 따라 지역적인 관계 때문에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즉, 매월 세나뚜스 월례회를 개최하는데 각 교구 평의회에서는 광주까지 와서 종합보고를 해야하고 방문도 가야 하며 합동회의 때도 광주까지 와야하는 등 지리적인 여건관계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 레지오의 효율적인 관리 운영을 위해 서울 지역에 세나뚜스 설립을 서두르게 되어 마침내 세나뚜스로 승격시켜 줄 것을 꼰칠리움에 상신하여 1978년 12월 23일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로 인준을 받았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는 서울 지역의 인천, 수원, 춘천, 원주, 대전, 청주 교구의 레지오 조직의 관리 운영을 담당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한국 세나뚜스는 이에 광주, 대구, 부산, 전주, 마산, 제주, 안동 교구의 레지오 관리와 운영만을 전담하게 되었다. 광주와 서울의 양 세나뚜스는 성모님께 일치하는 모습으로 굳게 뭉쳐 오늘도 하느님 나라 건설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된 이후 평신도 사도직의 신성한 의무를 정성껏 수행하며 한국 교회 발전에 봉사해 왔다. 그 동안 전국적인 큰 행사도 치루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할 만한 행사는 아래와 같다.

1978년 5월 5일 한국세나뚜스 주최로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25주년 행사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전국의 단원들과 영적 지도자들을 모시고 성대히 개최하였다. 그리고 1979년 7월 16~17일 양일간에는 서울 상지회관에서 천주교 한국선교 200주년에 즈음한 교세 200만 신자 확보를 위한 전국 꼬미씨움 단장, 지도신부 회의를 개최하고 민족 복음화 활동 5개년 계획안을 확정하였다. 또한 1984년에는 한국 200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200만 신자 선교를 위한 각종 행사를 서울과 광주의 양 세나뚜스에서 선교의 과학적인 계획을 세우고 각 교구마다 행사를 거행하여 선교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레지오의 일치를 재다짐하였다. 1984년 5월 6일에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되었던 성인 103위 시성식 및 한국 선교 200주년 경축행사 대행사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6년 10월 25~26일에는 광주 명상의 집에서 전국 꼬미씨움 단장, 지도신부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3세기를 향한 민족 복음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그 내용은 1990년까지 300만 신자화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하자는 다짐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 역사상으로 두 번째인 성모성년(1987년 6월 7일~1988년 8월 15일)을 윤허함에 따라 성모군단인 한국 레지오에서는 전국의 각 꾸리아 단위로 성모성년 개막에 따른 경축행사를 성대히 가졌다.

1988년 4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35주년을 맞이하여 맨 처음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던 목포 산정동 본당의 정원에 기념비를 건립하여 한국 세나뚜스 총재이신 윤공희 대주교의 주례로 기념비 제막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는데 각 지역에서 6천여 단원들이 축하 행사에 참여하였다. 한국 레지오 성지로 조성되어야 할 선정동 본당에 레지오 첫 기념 사업으로 기념비가 건립되었음은 보람있는 일이며 앞으로 기념관과 기념탑 등을 건립하여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성지 조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1988년 5월 15일에는 한국 세나뚜스 주최로 성모성년 전국 대회를 청주 공설운동장에서 8만 5천여명의 단원들이 모여 성대히 개최하였다. 이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파악하고 민족 복음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이번 큰 행사는 5월 성모성월을 더욱 찬란히 장식하였다. 이 경축행사에 꼰칠리움 극동지역 담당 맥그라쓰 신부도 참석하여 식장을 더욱 빛내 주었다. 이 외에도 많은 행사들이 있었는데 특히 단원들의 영성생활을 지도하고 성모님과 일치하며 충성스런 성모군대의 정예 군대화를 위하여 전국 각 교구 단원들을 대상을 기사교육을 일년에 몇 차례 실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교육과 피정을 실시하여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며 레지오의 목적과 정신이 몸에 배도록 인내와 기도로 꾸준한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양 세나뚜스는 단원들의 신심을 두텁게 연마하고 영웅적인 활동성을 소개하여 레지오의 발전을 기하고 성모군대의 일치된 모습으로 민족 복음화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레지오 마리애'란 월간지를 창간하게 되었다.

'레지오 마리애'란 이름으로 1988년 8월 1일에 발간된 레지오 영성지는 한국 레지오의 길잡이가 되고 장지기가 될 것이며, 조직에 순종하는 레지오 정신을 발휘하는데 활력소의 역할을 다할 것은 물론 민족 복음화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굳게 믿는다.

1991년은 세계 레지오 창설 제 70주년이 되는 축복된 해이다. 한국 세나뚜스에서는 경축행사를 각 교구 평의회별로 실시토록 하였는데 예정대로 모두 실시하였으며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에서는 4월 5일 광주 가톨릭 대학 운동장에서 윤공희 대주교님을 모시고 8천여 단원들과 제 7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히 거행하였다.

1993년 5월 5일에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제 4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 주최로 광주대교구 산하 레지오 단원 약 8천명과 영적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미사와 경축식을 성대히 실시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서울Se., 대구Re., 부산Re., 전주Re., 마산Re.에서도 각각 레지오 도입 제 40주년 행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에서는 산하 교구를 대상으로 중견 간부 양성을 위한 레지오 제 1, 2, 3단계 기사교육을 매년 2회 이상 2박 3일 일정으로 실시하여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 각종 교육과 봉쇄 피정을 통하여 평신도 특수 사도직의 수련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5월 23일에는 레지오 마리애의 최초 도입지인 목포 산정동 성당 구내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건립하여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 총재 윤공희(빅토리노)대주교님의 주례로 축성 미사를 봉헌하였다.